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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붕대 감기_윤이형/ 여성들의 연대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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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붕대 감기> ebook 캡쳐본

<소설 붕대 감기_윤이형>

 

소설은 미용실 실장인 해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해미는 우연히 8개월 전에 아이와 함께 염색을 하고 간 은정이 떠오른다. 마지막에 자신이 은정에게 선물한 책이 문제였을까 하고 생각한다. 해미는 평소 타인들에게 자신의 취향을 드러냈다가 머쓱해지는 일이 많았다. 해미의 취향을 나열하자면 호피 무늬, 호접란과 같은 화려한 꽃.

 

다음은 은정의 이야기다. 은정은 워킹맘이었다. 과거형을 사용한 건 그녀의 아들, 서균이 의식불명이 되고 간병을 하느라 휴직을 했기 때문이다. 8개월째 의식불명인 서균을 간병하다가 우연히 미용실에 들러 투블럭에 가까운 커트를 한다.

 

이어서 미용실 실장인 해미 밑에서 일하는 지현과 그녀의 친구 미진 이야기도 나온다. 이렇게 여성들의 이야기가 쭉 나열된다. 시간 순도 아니고 해서 관계도를 그려가며 인물들을 파악했다.

 

소설의 중심은 고등학교에서 만나 사십 대가 된 진경과 세연의 관계다. 소설 제목도 이들과 관련 있다. 고등학교 교련 시간에 둘씩 짝을 지어 머리에 붕대 감는 실기 시험을 봤는데 세연이 매우 긴장한 탓에 진경의 머리에 붕대를 원래 감아야 하는 것보다 한 바퀴 더 돌려 감았다. 붕대가 모자라자 당황한 세연은 붕대를 콱 당겼고 진경은 악! 소리를 질렀다. 서로에게 좋은 기억은 아니었지만 그날로 인해 서로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고 꽤 오랜 기간 인연을 이어간 게 아닐까.

진경과 세연은 고등학교 3년 내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직장에 들어가면서 연락이 끊어졌다. 하지만 6년 전 페이스북을 통해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3년 전부터 진경은 세연의 태도가 달라짐을 느꼈다.

세연으로 하여금 진경을 보는 눈에 필터를 씌우고 진경의 얼굴을, 진경이 쓰는 문장들을, 진경의 하소연과 넋두리를, 예전보다 한층 엄격해진 눈으로 하나하나 평가하게 만든 것은 아무래도 그 공포였을 것이다.
으깨지고 싶지 않고, 조롱받고 싶지 않다는 공포.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친구에게 살갑게 말을 건네지 못하는 사람이 되게 하고, 먼저 전화를 걸지 못하게 만들었던 그 혼자라는 공포.
p. 114

 

 

 

 

 

 

소설이 거의 끝나갈 때쯤 진경과 세연의 상상 속 대화가 나온다. 세연의 말보다는 진경의 말이 더 인상 깊었다. 진경의 말을 인용하자면,

"너는 가끔 사람들의 눈 앞에서 문을 꽝꽝 소리 나게 닫아버리잖아.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 사람들이 따르지 않기 때문에 말이야. 그럴 때마다 말하고 싶었어.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좀 기다려줄 순 없는 거니? 모두가 애써서 살고 있잖아. 너와 똑같은 속도로, 같은 방향으로 변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삶이 전부 다 잘못된 거야? 너는 그 사람들처럼, 나처럼 될까 봐 두려운 거지. 왜 걱정하는 거니, 너는 자유롭고 우리처럼 되지 않을 텐데. 너는 너의 삶을 잘 살 거고 나는 너의 삶을 응원할 거고 우린 그저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인데."
p. 125

 

소설 <붕대 감기>는 여성들의 우정, 연대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성들끼리의 화합이라기보단 서로 간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라고 제시하는 듯하다. 같은 여성이지만 기혼일 수도, 미혼일 수도 있고, 워킹맘일 수도, 전업주부일 수도 있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물론 다를 수 있다. 서로 다르다고 해서 미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상상 속 진경의 말을 통해 작가의 의견을 표하는 게 아닐까.

 

오랜만에 읽은 소설이었는데 너무 좋았다. 여성들의 이야기고 우리들의 이야기다. 같은 여성으로서 충분히 공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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